http://www.zoglo.net/blog/jinge 블로그홈 | 로그인
김혁
<< 9월 2024 >>
1234567
891011121314
15161718192021
22232425262728
2930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나의카테고리 : 칼럼니스트

신념이 깊은 의젓한 양처럼
2015년 01월 05일 13시 52분  조회:3781  추천:13  작성자: 김혁

칼럼

 
신념이 깊은 의젓한 양처럼
 

김혁

 
 

황혼이 짙어지는 길모금에서
하루 종일 시들은 귀를 가만히 기울이면
땅거미 옮겨지는 발자취소리
 발자취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나는 총명했던가요
 
이제 어리석게도 모든 것을 깨달은 다음
오래 마음 깊은 속에
괴로워하던 수많은 나를
하나, 둘 제고장으로 돌려보내면
거리 모퉁이 어둠 속으로
소리 없이 사라지는 흰 그림자
 
흰 그림자들
연연히 사랑하던 흰 그림자들
 
내 모든 것을 돌려보낸 뒤
허전히 뒷골목을 돌아
황혼처럼 물드는 내 방으로 돌아오면
 
신념이 깊은 의젓한 양처럼
하루 종일 시름없이 풀포기나 뜯자.
 
윤동주의 시 “흰 그림자”의 전문이다.
1942년 저 유명한 “참회록”을 읊조리고는 현애탄을 넘은 윤동주의 일본류학시절 첫번째 작품이다.
편편마다 훌륭해 “옥석”을 가리기 힘든 윤동주의 시 중에서 양띠해를 맞아 특별히 이 시를 뽑아 읊어 봤다.
시를 보면, 화자는 하루 종일 황혼이 짙어지도록 어떤 소리를 들으려고 귀를 기울이고 있다. 시에서 “오래 마음 깊은 속에/ 괴로워하던 수많은 나”인 “흰 그림자”는 즉 시인을 괴롭게 만든 수많은 고민이며 “황혼이 짙어지는 길모금”은 어두운 곳에서 선택의 갈림길에 선 상황을 은유하는듯 하다.
화자는 마음 깊숙이 이런 고민을 갈무리하고 선택의 갈림길에서 괴로워 한다. 드디여 시인은 “하루종일 시들도록 귀”를 기울인 끝에 이제 어리석지만 늦게나마 모든것을 깨닫고 오래 마음 깊은속에 괴로워하던 해결할수 없는 고민들을 하나, 둘 버리기 시작한다. 그 동안 연연하면서 사랑하기까지 했던 그 고민들을 돌려보낸 뒤에 “땅거미”를 옮길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의젓하게 풀을 뜯기시작하고 있는것이다.


2015년 새해는 을미(乙未)년 양의 해다. 새로운 문턱을 넘는 섣달 그믐의 밤에 모두 밝은 꿈을 꾸었기를 바래본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초야에 묻혀 지내던 시절 꾼 꿈은 바로 양 꿈이였다고 한다.
이성계가 꿈속에서 양을 보았는데 양의 뿔과 꼬리가 떨어지는 바람에 그만 놀라 잠에서 깼다. 꿈자리가 요상해서 무학대사를 찾아가 꿈 이야기를 했더니 대사는 곧 임금에 등극할 것이라고 해몽했다. 한자의 “양(羊)”에서 뿔과 꼬리에 해당하는 획을 빼내면 “왕(王)”자만 남게 되니 곧 임금으로 등극할거라는 풀이였다. 이로서 양 꿈은 길몽, 양은 상서로움의 상징이 됐다.
여기서 상서로움의 ”상(祥)”자를 보면, 왼쪽의 보일“시(示)”자는 원래 “신(神)”을 뜻하는 글자이다. 그러니 신이 양을 만나면서 상서로움을 뜻하는 “상(祥)”이 된것이다. 음(音)으로는 밝은 양(陽)과 같아 더욱 길상의 의미가 있다.
 
아홉 번 굽어진 양의 창자처럼 세상이 복잡해 살아가기 어렵다는 구절양장 (九折羊腸)이라는 말이 있다. 올해의 수호신 양이 어떤 기운을 몰고 올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앞길이 아홉번 굽어진 길이 주어질지라도 양처럼 깊은 생각, 인내로 그 위기를 넘어야 할것이다.
그러할진대 자연의 순리를 따르며 조용히, 서두르지 않고 주어진 환경에 조화롭게 적응하는 양의 이미지는 주변을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빨리 달리기에만 급급해 하는 현대인들에게 많은 교훈과 계시를 준다.
잎새에 이는 바람”속에서도 “신념이 깊은 의젓한 양처럼" “주어진 길”을 걸어갔던 윤동주님의 시를 다시 읊어 보는 을미년의 첫 아침이다.
을미년, 푸른 풀밭의 양떼처럼 모두가 행복하고 길상스러운 한 해가 되길 소망한다.
 
2015 을미년의 첫 아침
청우재(听雨斋)”에서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파일 [ 3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83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83 SNS의 “꽃”, 디카시 2020-09-21 2 734
82 지천명(知天命)의 자치주 2020-09-08 11 920
81 한 농예인의 동상 2020-08-01 12 1066
80 바람을 가르는 붓 2020-03-09 30 1522
79 윤동주를 기리는 사람들 2019-12-30 26 980
78 신(新) 매체시대 새로운 문학을 위한 테제 2019-02-28 29 1086
77 김혁소설가와 그의 위안부소재의 장편소설 “춘자의 남경” 2019-02-12 16 1208
76 “백세” 김학철 2018-12-10 13 1643
75 신(新) 매체시대 새로운 문학을 위한 테제 2018-09-14 20 1192
74 동주를 위한 3개의 공책(空册)- 3 2017-11-22 13 1665
73 동주를 위한 3개의 공책(空册)- 2 2017-11-21 20 1676
72 동주를 위한 3개의 공책(空册)-1 2017-11-12 15 1348
71 필끝에 건곤乾坤세상 있나니(련재1) 2017-08-03 14 1582
70 죽음의배- "페스카마"호 2017-06-13 17 2106
69 창피함에 대하여 2017-05-31 13 1638
68 꼬마 축구팬의 눈물 2017-04-21 15 1671
67 필끝에 건곤(乾坤)세상 있나니 2017-02-28 17 1724
66 우리의 이야기를 여러 어종(語種)으로 세상에 들려주자 2017-02-10 15 1896
65 로신의 어깨 2016-09-13 17 2270
64 즐거운 축구 패러디 2016-09-13 13 2525
63 꿈과 사다리 2016-06-29 10 2318
62 청산을 에돌아 “두만강”은 흐르고 2016-06-18 10 2403
61 소울메이트 2016-06-18 14 2235
60 구순(九旬)의 박물관 2016-05-29 11 2358
59 리얼리즘과 문학비 2016-05-04 17 2000
58 “백세” 김학철 2016-04-23 30 2517
57 난 로봇이다 2015-09-14 11 2921
56 피서(避暑)의 방식 2015-08-19 13 2734
55 영화"암살"의 녀주인공과 "간도참변" 2015-08-18 16 4793
54 어느 화백의 실크로드 2015-07-30 18 2909
53 무자비(無字碑) 2015-07-13 13 3547
52 요절 문인 2015-07-07 16 3116
51 전범기(戰犯旗) 펄럭... 2015-06-30 13 4512
50 소금 이야기 2015-06-16 12 2903
49 12 초 2015-06-04 22 5290
48 북간도의 큰 스님 2015-05-26 14 3678
47 "언브로큰" 그리고 윤동주 2015-05-07 22 4471
46 지하철에서 읽은 모디아노 2015-04-29 12 2878
45 황제의 수라상 2015-03-30 12 4786
44 봄 우뢰 2015-03-16 11 3745
‹처음  이전 1 2 3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